2월 21일(수) 역대하 18장
말씀읽기
https://youtu.be/c6VeneqVuw0?si=OxDvsM8SXLdbWC0o
묵상가이드
심심한데 전쟁이나 할까(18:1~3)
여호사밧은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러 간다. 역대기 기자는그 전에 이미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기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다’고기록한다(1절). 여호사밧이 아합 가문과 인척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만큼 위상이 높아진 것이다. 여기에 대해 역사적으로 두 나라의 관계를 살펴봐야 하는데, 여러가지 면에서 북이스라엘이 남유다보다 월등했다. 경제적, 군사적, 문화적, 외교적으로 북이스라엘이 남유다를 압도했다. 역대기 기자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대등하다고 애써 강조하지만, 본문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여호사밧이 아합에게 눌려 지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여호사밧이 아합에게 대답하는 말(3절)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함께 길르앗 라못을 치자고 제안한다. 전쟁을 일으키자는 것이다. 아합이 볼 때 그 지역을 확보하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유익하다고 생각한모양이다. 그래서 아합은 그곳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전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여호사밧은 매우 정중하면서도 우호적으로 대답하는데, 여호사밧이 아합의 말을 거절할 수 없는 형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합은 자신의 야욕으로 전쟁을 일으키려 하고, 여호사밧까지 끌어들이려 한다. 이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다.
그저 내 듣고 싶은 대로(18:4~27)
아합이 길르앗 라못을 함께 치자고 제안하자 여호사밧은 흔쾌히 허락한다. 그런 다음에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오늘 물어보소서”라고 말한다. 역대기 기자는 이것을 통해 여호사밧이 얼마나 신앙적인 인물인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여호사밧이 아합과 얼마나 다른지도 보여준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아합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아합은 자신이 듣고자 하는 것만 들으려 했다. 본문은 두 사람이 보여주는 차이점을 예리하게 대비시킨다.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고 하자, 아합은 선지자 400명을 불러 모으고 그들에게 길르앗 라못을 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켜도 좋을지 묻는다. 그러자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올라가소서 하나님이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들이 그릇된 말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그런 말을 하는 까닭은 거짓말하는 영이 그들에게 들어갔기 때문이다(18~22절). 예언자들이나 아합은 그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여호사밧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선지자들의 말이 아무래도 미심쩍어 다른 사람이 더 있느냐고 묻자, 아합은 마지못해 미가야를 부른다. 왕 앞에 선 미가야는 만약 아합 왕이 전쟁에 나가면 전사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 말을 듣고 화가 난 아합은 자신이 전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미가야를 옥에 가두고 극심한 고통을 겪게 하라고 명령한다. 아합이 미가야를 얼마나 증오했는지 “이 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난의 떡과 고난의 물을 먹게 하라.” (26절)고 한 말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다 결국 다치지(18:28~34)
아합은 자신에게 전사할 것이라고 말한 미가야를 비웃으면서, 전쟁터에서 평안히 돌아올 것으로 자신 있게 말한다(26절). 아합은 죽을 사람이 자신이 아니고 미가야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죽음은 남의 일이다. 따라서 정작 죽을 사람은 자신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런 불신앙이고 무지한 고집이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게 된다. 아합은 말을 그렇게 했어도 아무래도 미가야가한 말에 마음이 걸렸던지 변장을 하고 전투에 참가한다. 그런데 아합은 무심코 날아온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고, 전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끝내 죽고 만다.
본문은 아합과 여호사밧을 대비시킨다. 아합은 변장을 했지만 화살에 맞아 전사하고, 여호사밧은 죽을 위기를 맞이해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가게 하셔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아합은 자신이 전쟁터에서 ‘평안히’ 돌아올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평안히 돌아온 사람은 여호사밧이다(19:1).
1.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십니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십니까? 자신이 듣고자 하는 것만 들으려 하십니까?
2. 아합은 미가야의 말이 마음에 걸려 변장을 하고 전투에 참가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부분적으로만 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모르는척하고 있지는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