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6] 혀의 치유와 믿음의 재건을 위한 빛의 절기 '하누카 8일'의 은혜_DAY 2
Does Your Tongue Need Healing?
당신의 혀는 치유가 필요한가? _데릭 프린스
DAY 2 입을 통해서 흘러 넘치는 마음
마음과 입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2:33-37절에서 말씀하셨다.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예수님은 비유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마음과 입의 직접적인 관계를 설명하신다. 예수님은 마음을 나무에, 그리고 입에서 나오는 말을 과일에 비유하신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어떤 종류인가는 곧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선한”이란 단어를 세 번, 그리고 “악한”이란 단어를 세 번 사용하셨다. 마음이 선하면 그 사람의 입에서는 선한 말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악한 사람은 그 입에서 악한 말이 나올 것이다.
마태복음 7:17-18절에서 예수님은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나무의 본질은 필연적으로 그 열매의 종류를 결정한다. 반대로 우리가 과일의 종류를 보면, 그 나무의 본질을 알 수 있다. 나무는 마음이고, 열매는 입이다. 마음이 선하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선하다. 그러나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악하면, 그 사람의 마음이 악한 것이다. 나쁜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없고, 좋은 나무에서 나쁜 열매를 거둘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선함과 순결함 또는 의로움에 대한 모든 종류의 아이디어로 자신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확실하고 절대 실수가 없는 가늠자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타락했다면 우리 마음이 타락한 것이다. 다른 결론은 있을 수 없다.
나는 동아프리카에서 5년간 교육사역을 하였다. 내가 섬기던 부족들 중의 하나는 마리골리 부족이었다. 나는 그 부족 언어에서 “마음”과 “목소리”를 나타내는 단어가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이 사실을 통하여 나는 목소리가 말로써 그 마음의 상태를 나타낸다는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다. 당신은 선한 마음에서 악한 말을 할 수 없고, 악한 마음에서 선한 말을 할 수 없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 저는 아주 선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갑 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네 혀를 보여주거라. 내가 너의 혀를 보니 네 마음의 상태를 바로 알겠구나.” 우리는 여기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에 대한 묘사를 살펴 볼 것이다. 시편 45:1-2절은 메시아의 아름다운 모습을 묘사한다.
내 마음이 좋은 말로 왕을 위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글 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도다. [시편저자가 왕이신 메시아에게 하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
여기에 메시아의 은혜와 아름다움과 도덕적 순결함의 모습이 있다. 드러난 아름다움의 첫째는 무엇인가? 그의 입술이다. “은혜를 입술에 머금었다”라고 말한다. 그다음에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라고 말한다.
두 가지 매우 중요한 원리가 드러나 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는 우선적으로 그의 입술을 통해서 드러났다. 둘째, 하나님 은 그의 입술의 은혜 때문에 영원히 축복하신다. 예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을 때 그를 체포하러 갔던 사람들이 빈손으로 돌아왔으며,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고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였다. (요 7:45, 46)
그의 입술에서 쏟아져 나오는 은혜는 그가 메시아임을 증명했다.
솔로몬의 아가에는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예언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아가서 4:3절은 신부에 대한 말씀이다.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쪽 같구나.
신부의 특징에 대하여 첫째로 묘사한 것은 그녀의 입술이다.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홍색”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한 성화를 나타낸다. 그 입술이 보혈에 씻겨진 것이다. 그 결과 입이 아름답게 되었다. 얼굴은 너울 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주목하라. “네 뺨은 석류 한쪽 같구나.”뺨은 너울 속에 숨겨져 있다. 하지만 목소리는 너울을 뚫고 들린다. 다른 아름다움은 너울에 모두 가려져 있지만 목소리의 아름다움은 너울을 통과하여 드러난다. 목소리는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아가서의 같은 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아가서 4:11)
신부의 혀를 묘사하는 두 단어에 주목하라: “꿀과 젖.” 이 단어는 약속의 땅을 묘사는 두 단어이기도 하다. 약속의 땅의 아름다움이 신부에서 보이는데, 특별히 그녀의 혀와 입술에서 보인다. 이 아름다운 입술과 함께 향기가 있으며, 이 향기가 너울을 뚫고 나온다. 다시 한번 신부의 아름다움은 너울에 가려 보이지 않으나 그녀의 목소리와 그녀의 입술의 아름다움으로 인해서 너울을 뚫고 나오는 향기로 드러난다. 그녀의 입술은 홍색 실과 같고 그녀의 입은 사랑스럽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당신과 나에게도 이것은 사실인가? 우리 자신에게 이 질문을 해야 한다.
메시아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인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영적이고 도덕적인 아름다움을 그들의 입술과 말로 드러낸다. 야고보는 야고보서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경건과 받지 않으시는 것에 대하여 말한다.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경건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한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야고보서 1:26)
우리가 경건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교회에 출석하고, 찬송을 부르고, 경건한 사람에게 요구되는 모든 것을 행할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우리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우리의 경건은 헛것이며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 다른 한 편으로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경건에 대하여 말한다. 역시 오늘날 일반적으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실천과는 차이가 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야고보서 1:27).
첫째로 요구되는 정결한 경건은 교회 출석이 아니고, 성경읽기도 아니다. 고아와 과부처럼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실질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신이 어떤 방법으로든지 경건하다면 야고보서 1:26-27절의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자기를 비춰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제안한다. 당신의 혀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당신의 경건은 헛것이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경건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첫째로 무엇보다도 먼저 어려움 중에 있는 고아와 과부 같은 사람들을 돌봐야 한다.
사실은 야고보 사도가 두 구절에서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당신의 경건함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싶다면 하나님께서 맨 처음 하실 말씀은 “너의 혀를 보자!”일 것이다. 당신의 경건이 받을만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당신의 혀에 달려있다.
야고보는 경건한 사람들의 일관되지 못한 것을 지적한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야고보서 3:9-12)
야고보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정확하게 똑같이 말한다. 나무가 좋으면 열매도 좋을 것이다. 당신의 마음에 무화과나무가 있으면 당신의 입으로부터 무화과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에 포도나무가 있다면 당신의 입에서 결코 무화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당신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를 드러낸다. 그는 물의 흐름과도 같다고 말했다.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물이 맑으면 당신의 마음에 있는 샘도 맑은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물이 짜고 소금기가 있다면 당신의 마음에 있는 샘이 짜고 소금기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필연적으로 당신의 참된 마음 상태를 드러낸다.
-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 적용과 실천 사항을 적어 보세요.
- 아래에 기도 제목을 적고 말의 변화와 마음의 회복을 위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