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그룹 및 가정예배 가이드/청장년

[신약3권] 청장년 1과 - 구원자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기름 부음을 받으시다

벧엘교회 2025. 3. 30. 15:03

신약3 질문 가이드 0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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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삶의 어떤 영역에서 자신이 관대하다고 느끼나요?
도입의 예화에서 볼 수 있듯이 부모는 보통 자녀에게 무엇이든 아낌없이 베풀고자 합니다. 심지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에게 너그럽고 자기 소유를 아까워하지 않고 나누어 주는지, 또는 물건이나 돈이나 시간이나 재능 등 자기 소유 가운데 어떤 것을 잘 나누는지, 만약 물건을 나누길 잘 한다면 어떤 종류의 물건을 잘 나누는지 구체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게 하십시오. 이 세션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마리아와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넘기는 가룟 유다를 대조하며 관대함을 배우게 합니다. 자신의 관대함에 대해 나눌 때 실제적인 나눔과 관련해 나눌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을 관대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도입의 예화에서 보면 자녀를 향한 사랑이 그 부모의 관대함의 동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도 관대함은 끝이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사랑’이 우리 자신을 관대하게 만듭니다. 한편, ‘가치소비’가 대변해 주듯이 ‘가치 판단’이 우리를 관대하게 만들기도 하고, 인색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비움의 가치’를 가지고 예수님께 값비싼 향유를 붓는 관대함을 실천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예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자신의 탐욕을 채워 줄 돈에 가치를 두어 예수님께 관대하지 못했습니다. 학습자들이 자신이 누군가에게 무엇을 관대하게 나누어 주는 이유와 동기에 대해 세심하게 돌아보도록 인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1.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과 장례를 예비했습니다(마 26:6~7)

성경에서 우리의 기대를 뒤집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증거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말씀해 주시고(막 4:11) 병 고침 등으로 하나님 나라를 친히 나타내 보여 주시기도 하셨습니다(눅 9:11). 예수님이 말씀해 주시고 보여 주신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의 상식뿐 아니라 상상도 뛰어 넘는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오는 새 물결이며 바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크냐’는 문제로 논쟁할 때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고, 천국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가 크다고 말씀하셨는데(마 18:3~4) 이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열두 제자나 당시 사람들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의 생각이나 기대도 뛰어넘는 하나님 나라의 증거입니다. 학습자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해 주신 이야기나 예수님의 행적에서 자신의 가치관이나 패러다임의 전환 또는 사회문화적 관습을 뒤집는 내용을 발견하고 놀란 적이 있는지, 그 내용은 어떤 내용인지 나누도록 인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무엇을 행하시는지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이 본문은 한 여자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 예수님은 마리아의 이 행동을 예수님의 장례를 위한 좋은 일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참조, 마 26:10, 12).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이 일로 기름 부음을 받으시고, 메시아로서 공식적으로 직무에 취임하셨다는 의미입니다(인도자용 p.20). 메시아로서 예수님의 직무는 인류의 대속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나 제자들이 고대하던 메시아상은 이런 고난과 죽음을 당하는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승리를 이루는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고난받고 죽는 메시아로서 나아가시려 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은 마리아의 기름 부음과 그 의미를 통해 예수님이 구약에서부터 예언되어 왔던 그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이 태초부터 약속해 오셨던 구원을 이루시는 구주로, 십자가 희생으로 인류의 구원을 이루심을 이해하는 토대와 패러다임을 제공해 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마리아의 기분이 어땠을까요?
예수님 당시 손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것은 손님을 대접하는 관례이며 환영 절차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손님이 오면, 먼저, 손과 발을 씻을 물을 내어 씻게 합니다. 그 다음 볼을 맞대는 인사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으로 손님의 머리에 감람유(올리브) 기름을 부어 먼지로 더러워진 머리에 위생과 윤기와 향기를 주고, 피곤함을 풀어주었습니다(참조, 눅 7:44~46). 또한 향유는 장례식에서 향품과 함께 사용되기도 했습니다(참조, 눅 23:56).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미리 예견하거나 메시아에 대한 기름 부음을 의도하고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그저 예수님을 귀한 손님으로 맞이하며 값비싼 향유로 극진히 섬겼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의 행동을 예수님의 장례를 위한 좋은 일이라고 말씀해 주셨을 때도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몰랐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실제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예수님의 그때 그 말씀이 이 의미였나 반문하거나 놀랐을 것 같기도 합니다. 또는 그때서야 주님의 뜻을 깨닫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 말씀이 실현되었다는 것과 하나님의 일에 자신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경외심이 크게 일어났을 것입니다. 단지 손님을 대접한 자신의 일상적인 일이 역사적이고 우주적이고 영적인 일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을 경험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 말씀이 실현되었을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 중에 지금은 이해할 수 없으나 시간이 흐른 후에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했을 때 어떤 마음과 느낌이었는지 생각해 보게 하십시오. 여기서 마리아의 기분을 상상해 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불가시적인 하나님의 사역’을 하심을 나중에 깨닫거나 확인하고 나서 기분이 어땠는지 경험을 나누게 하십시오. 이러한 이해는 현재 상황과 자신의 행동에 신앙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더욱 신실하게 살게 하는 힘이 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헌신하느라 당하는 굴욕과 수치를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이 질문은 두 번째 포인트의 본문과 연결해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은 마리아의 행동이 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윤리적인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녀를 괴롭게 했습니다(10절) ‘괴롭게 하다”라는 헬라어 단어의 어원은 ‘구타’, ‘고통’, ‘벤 상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비판적인 말이 마리아를 구타하고 상처를 내어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마리아는 굴욕과 수치를 넘어 내면의 쓰리고 아린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반론을 제기하거나 반박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성경에 마리아의 반응에 대한 어떤 언급도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침묵 속에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달리 그녀의 행동을 좋은 일이라고 말씀하시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그녀가 행한 일도 전해질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섬김과 봉사를 했어도 세상의 편협한 시선으로 인해 비난과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억울하고 불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때로 우리의 침묵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기회가 됩니다. 학습자들이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그 내용을 나누며 믿음의 길을 서로 격려하는 시간을 가져 보길 바랍니다.


2.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동을 칭찬하셨습니다(마 26:8~13)

당신은 나눔의 가치를 어떻게 매깁니까?
사람들이 소유만을 추구하고 나눔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성숙한 사람들일수록 ‘소유의 가치’보다는 ‘나눔의 미덕과 가치’를 중요시합니다. 이것은 소유물보다 나눔을 받게 될 상대방의 가치를 더 높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땅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도 하나님보다 더 우선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주기까지 하시며 사람을 가치 있게 여기시고 최고의 나눔을 행하셨습니다. 학습자들 각자가 생각하는 나눔의 가치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도록 인도하시되, 그들의 의견이 사람들 사이의 ‘나눔의 중요성’으로 귀결되지 않고,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믿음에 기반을 둔 나눔일 때 진정한 가치가 있음을 새길 수 있게 이끌어 주십시오.

 

왜 예수님은 마리아의 이 헌신적인 행동이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 좋은 일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좋은 일’이라는 단어에서 ‘좋은’은 헬라어로 ‘칼로스’인데, 이 단어는 ‘아름다운’ 혹은 ‘가치 있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성경 NIV와 RSV는 ‘good’이라는 단어 대신에 ‘beautiful’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행동이 선하고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보셨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일이 예수님의 죽음과 연관된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향유는 실제로 장례 때 사용된 물건입니다. 하스모니안 왕조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 약 300년 넘게 이어진 장례문화를 보면,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날 바로 시신을 동굴에 안치하여 1년간 보관합니다. 그러다 1년이 지난 후 다시 뼈를 모아 유골함에 넣는 두 번째 장례를 치릅니다(예루살렘 탈무드 Moed Qatan 1:5). 그래서 첫 번째 장례를 치를 때 시신의 부패로 인한 악취를 막고자 시신에 진한 향유로 바르고 시신을 굴속에 넣어 봉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과 시신의 위치를 확인한 후 돌아가 향유와 향품을 준비했습니다(눅 23:56). 그런 의미에서 이 여인이 바친 순전한 나드 1근(요 12:3)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표하고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막 14:8) 가치있고 아름다운 일이었습니다. 또한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로 기름 부음을 받는 일(사 61:1)이었기 때문에 ‘좋은 일’이었습니다.


3.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려고 계획했습니다(마 26:14~16)

우리 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반의 형태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사회와 문화 전반에서 친구 사이에 의리를 저버리거나 부부 사이에 불륜을 저지르는 등 개인적 배반 외에도 정치적 배반인 반역, 종교적 배반인 배교 등 다양한 배반의 형태를 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공적으로 인기나 존경을 받는 사람들의 거짓말이나 변질, 법과 제도의 변칙적이고 편법적인 운영, 불공정 거래,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는 사회 구조 등으로 배신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습자들이 직접 경험했거나 책이나 영화 또는 기사 등을 통해 보게 된 구체적인 배반 사례를 자유롭게 나누게 합니다.


그런 경우에 배반을 유도하는 근본적인 동기는 무엇일까요?
예루살렘의 히브리대 철학과 명예 교수 아비샤이 마갈릿은 그의 저서 《배신: 인간은 왜 믿음을 저버리는가》에서 배신은 “두터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신뢰라는 접착제를 떼어내는 것”이며, ‘윤리’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배신의 동기는 복합적이라고 합니다. 배신의 동기를 돈이나 쾌락 등 한 가지로 단순화할 수 없으며, 이상주의적 동기와 상스러운 동기로 구분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서 배반의 동기를 찾는다면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도록 유도한 존재를 ‘사탄’이라고 말합니다(눅 22:3; 요 13:27).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두터운 관계에서 신뢰를 저버린 범죄 배후에도 사탄이 있었습니다(창 3:1~21). 야고보서 4장 1~4절에서는 정욕, 세상과 벗 되고자 하는 동기에 대해 말해 줍니다(인도자용 p.25). 사탄의 유혹과 인간의 죄가 각종 배반을 초래합니다. 학습자들이 나눠주는 배반의 사례를 듣다 보면 각 사례의 인물들이 배반하게 된 이유와 배경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서는 배반의 그 이유를 만들어 낸, 배반자 내면의 가장 밑바닥과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어떤 힘과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 실체를 파악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음과 힘을 다해 그리스도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마리아와 가룟 유다는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에서 대조를 이룹니다.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도 아낌없이 부어 드리며 예수님을 극진히 사랑했지만, 가룟 유다는 사탄의 영향과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탐욕으로 결국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야고보서에서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약 4:4)이라고 말씀합니다. ‘마음과 힘을 다해 그리스도를 헌신적으로 사랑한다’는 의미는 열심히 예배하고 봉사하는 것만 말하지 않습니다. 내면에서 육체의 소욕과 싸우며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학습자들이 주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지, 마음과 힘을 다해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 어떻게 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나누도록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