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읽기
1장
https://youtu.be/NjbjTAkgEG4?si=bMMBuH-exmFukxbF
2장
https://youtu.be/0Pe4jFzWFNI?si=WYOm-qsFLYuE5VE9
묵상가이드
https://youtu.be/jB2au0FGgjo?si=nsnmk-X-Xiv7t_EL
어두운 사사 시대에 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생겨날 수 있었다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그런 것이다. 우리는 괴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들의 신부를 취하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수행해 나가시며, 이 세상에서 일하고 계신다. 인간의 죄로 인한 흉한 소식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관한 좋은 소식을 우리에게서 빼앗아가도록 허용해서는 결코 안 된다.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의 삶 속에서 그리고 구세주의 계보 속에 들어 있는 다른 중요한 연결 고리들 속에서 일해오신 하나님의 섭리를 보라. 룻기 4장 17절은 성경에서 다윗의 이름이 처음으로 언급된 곳이다.
룻기를 이루고 있는 네 개의 장은 한 드라마를 이루고 있는 네 개의 막을 - (1) 눈물(tears), (2) 수고(toil), (3) 신뢰(trust), (4) 승리(triumph)를 - 보여준다. 룻기는 장례 이야기로 시작해서 결혼 이야기로 끝난다. 나오미는 쓰라림에서 행복을 향해 나아가고, 룻은 외로움에서 사랑을 향해 나아간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놀라운 그림이다!
1장
나오미와 그녀의 남편이 유다를 떠나 적의 땅으로 갔을 때, 그것은 죄를 범한 것이었다. 배를 불리면서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배고프게 사는 것이 더 낫다. 그들은 모압에서 잠시 머물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체류'는 아들들이 결혼할 때까지 오래 계속되었다. 그리고 아들들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기근을 피해 도망칠 수는 있지만, 죽음을 피해 달아날 수는 없다.
나오미는 자부들에게 친정으로 돌아라고 설득하는 죄를 범했다. 그녀는 두 모압 여인을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감으로써 하나님을 거역한 자기 가정의 불순종이 누설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신 23:3). 자부들을 이방 신을 섬기는 곳으로 되돌려 보내려는 유대인 여자를 상상해 보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게 되었던 룻은 돌아가기를 거부했다(16-17절, 2:12).
나오미는 비통해하면서 자신의 곤경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는 죄를 범했다. 나오미는 '즐거운'이라는 뜻이었고, 마라는 '쓴'이라는 뜻이었다. 모압으로 가기로 한 것은 그녀의 결정이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려 하는 것인가? '쓴 마음'은 우리 자신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 해를 가할 수 있다(신 29:18, 히 12:15). 그러므로 원망을 품지 말라.
하나님이 우리의 죄의 고통스러운 결과들을 막아주지는 않으신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스리신다. 하나님의 은혜로 텅 비었던 나오미는 채워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슬픔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2장
룻은 어린 신자였다. 그러나 추수 기간 동안 밭에서 이삭 줍는 것이 허용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었다(레 19:9-10). 그녀는 과부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신뢰했다(출 22:22, 신 10:18). 그리고 하나님은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으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해 일하기 시작하신다(잠 3:5-6).
여호와의 날개 아래(룻 2:12)
룻기 2장 12절은 그룹들의 날개가 속죄소 위를 덮고 있는 성막의 지성소에 주의를 집중시킨다(출 25:17-22). 하나님의 날개 아래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안전한 곳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시 36:7-8, 61:4, 91:1-4). 신자들은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한다(요 15:1-10). 그리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히 10:19-25). 하나님의 사람들은 '진 밖'에 있지만(히 13:13), 지성소 안에 있는 '휘장 안'에서 산다.
베들레헴에는 룻과 나오미를 가난과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최소한 두 명이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신의 뜻에 따라 그 둘 중 하나인 보아스의 밭으로 룻을 인도하셨다(참조 - 시 25:9, 사 42:16). 그림에 변화를 준 것은 나오미의 쓰라림이 아니라 룻의 신실함이었다.
보아스는 룻을 보호했고, 룻이 그가 누구인지를 알기 전부터 룻의 필요를 채워주었다.(그의 편에서 그것은 아마도 첫눈에 반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추수하고 남은 곡식에 의존해 사는 대신 룻은 그녀게 관대하게 베푸는 '추수 주인'의 친구가 되었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위해 하신 일들을 볼 수 있겠는가?
_ 워렌 위어스비, 「말씀묵상 365」
1. 하나님은 죄의 고통스러운 결과들을 막아주시지 않으신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다스리신다. '마라'라고 고백한 나오미의 삶을 다시 기쁨으로 바꾸셨듯,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에 고통과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신 일이 있는가?
2. 하나님은 룻을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셨고, 보아스를 통해 자비를 베풀어 주셨으며, 룻의 신실함을 통해 나오미를 만져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이끌어 가신다. 당신의 삶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을 만지시고 이끄시는 손길을 느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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