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es Your Tongue Need Healing?
당신의 혀는 치유가 필요한가? _데릭 프린스
DAY 3 말이 운명을 결정한다
야고보는 우리 삶에서 혀의 기능을 나타내는 몇 가지 예를 사용하고 있다.
첫째로 야고보서 3:2절을 보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야고보 사도는 당신이 혀를 조절할 수 있다면 당신의 삶 전체를 조절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당신의 혀를 다스릴 수 있다면 당신은 완전한 사람이다. 그 다음에 야고보서 3:3-8절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야고보는 우리 인생 전체에 혀가 얼마나 독특하고 영향력이 강한지를 가르치고 있다. 첫째로 사용하는 예는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이다. 그는 “만일에 우리가 말의 입에 재갈을 성공적으로 물리기만 한다면 말을 온전히 조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성경에서 말은 보통 육체적인 강함을 의미한다. 야고보는 말이 얼마나 강하든지 상관없이 재갈만 물릴 수 있다면 그 짐승을 온전히 조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입을 조종함으로써 그 말의 힘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입을 조종하는 것이 우리 삶 전 과정을 조종한다.
다음의 예는 좀 더 생생하다. 야고보는 우리의 혀를 배의 키와 비교한다. 배는 매우 큰 구조물이지만 바람과 물결의 엄청난 힘에 의하여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그러나 배에는 아주 작은 결정적인 부품인 키가 있어 배가 가는 모든 길을 결정한다. 키를 적절하게 사용하면 배는 항구에 안전하게 정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키를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면 배는 파선하게 될 것이다.
야고보는 우리 삶에서도 동일하다고 말한다. 우리의 혀는 배의 키와 같다. 우리의 혀가 우리의 삶의 여정을 결정한다. 혀라는 키를 적절하게 사용하면 우리는 지정된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혀가 적절하게 사용되지 못하면 우리는 파선할 것이다.
야고보는 또 산불을 일으킬 수 있는 작은 불꽃을 예로 들어 말한다. 매년 미국에서는 산불에 의하여 수십억 달러의 손해가 발생하는데, 야고보 사도가 말한 것처럼 아주 작은 불꽃으로 시작된다. 미국 산림청은 “오직 당신만이 산불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매우 강렬한 포스터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영적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혀는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야기하는 작은 불꽃과 같다. 다시 회생시킬 수 없이 태워버리는 불꽃과 같은 혀로 인해서 많은 교회와 종교 단체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야고보 사도가 사용하는 마지막 예는 치명적인 독이다. 그는 우리의 혀가 우리 삶의 모든 조직을 통해서 감염을 확산시키는 독과 같은 치명적인 요소와 같다고 말한다.
야고보 사도가 사용한 예들을 다시 생각해 보라.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 배의 키, 산불을 일으키는 불꽃, 생명수 강에 주입되는 독. 각각의 예에 내재하는 원리는 동일하다. 혀는 몸의 작은 부분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회생시킬 수 없는, 계산할 수 없을 정도의 손상을 야기한다.
내가 지적한 특별한 네 가지 그림들(말의 재갈, 배의 키, 산불을 일으키는 불씨, 삶 전체 흐름을 오염시키는 독) 중에서 혀의 엄청난 잠재력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배의 키이다.
키는 배의 항로와 운명을 결정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로부터 한 예를 살펴보려고 하는데, 이 사건은 이 교훈을 아주 명료하게 드러내 준다. 배워야 할 교훈은 이것이다. 사람은 혀의 사용으로 자기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사건은 민수기 13장 14장에 나와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나와서 약속의 땅으로 가고 있었다.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열두 정탐꾼을 보내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였다. 그 땅의 일반적인 특성, 거주민의 모습, 도시의 모습, 과일의 종류를 살펴보고 와서 보고하도록 하였다. 각 지파에서 한 명씩 선발하여 그 땅으로 보냈다. 그들은 40일 동안 그 땅을 두루 살피고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그들의 보고 내용은 민수기 13:26-28절에 나와 있다.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만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시면 액면 그대로 받을 것인가 아니면 받았다고 하고서는 이어서 “그렇지만”이라고 말할 것인가? ‘그렇지만’에 이어 내뱉은 ‘그 말들’은 백성들을 혼란과 의심에 빠뜨렸으며 원망과 불신의 죄악이 그들을 삼켜 버렸다.
그러나 정탐꾼 중의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런 부정적인 태도에 동조하지 않았다. 민수기 13:30-31은 이렇게 말한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여기에 사용된 단어를 주목해 보자. 갈렙은 “우리는 능히 이기리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10명은 “우리는 능히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했다. 두 정탐꾼은 “우리는 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따라가면 이들은 자기들이 말한 그대로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두 집단은 자기들의 말로 자기의 운명을 결정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민수기 14:20-24)
이 긍정적인 고백으로 갈렙은 자기의 운명을 긍정적으로 결정했다. 민수기 14:26-32절은 이렇게 이어진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는 말씀을 주목하라. 하나님은 사실상 “너희의 그 말로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행할 것인지를 결정하였다.”고 말씀하신다.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민수기 14:36-38)
죽음과 생명이 혀의 권세에 달려있다. 이보다 더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부정적으로 말한 자들은 죽음에 이르렀다. 긍정적으로 말한 자들은 생명을 얻었다. 그들은 각자의 말로 자기의 운명을 결정한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할 수 있었고, “우리는 할 수 없다.”고 말한 사람들은 할 수 없었다.
히브리서 4:1-2절은 이렇게 쓰여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 위한 약속으로 우리에게 동일하게 주어졌다.
그들이 구약성경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약속을 이루지 못할까 조심해야 한다.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었지만 치명적인 한 단어 “그러나”를 붙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부정적인 면에 집중했다. 그들은 장대한 거인들과 성벽이 있는 도시를 보고 “우리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믿음을 가지고 용기 있게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말한 두 사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
열 명의 정탐꾼들은 약속보다는 문제에 집중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정탐꾼은 문제가 아니라 약속에 집중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각자는 정확하게 자기가 말한대도 되었다. 이들은 각자 자기의 혀를 사용한 방법에 의하여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였다.
어떤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직면하게 될 때, 당신의 혀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동의를 할 것인가? 아니면 다음과 같이 말한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될 것인가? “그러나 이 문제를 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나는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자기의 혀로 운명을 결정한 정탐꾼들처럼 할 것인가?
이 교훈을 기억하라! 이와 같이 우리도 우리가 하는 말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
-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 적용과 실천 사항을 적어 보세요.
- 아래에 떠오르는 기도 제목을 적어 보자. 부정적인 말의 습관을 회개하고 내 말로 인해 잘못 들어선 삶의 방향이 있다면 돌이킬 수 있는 결단의 시간이 되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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